사랑의 탁월한 길

사랑이라는 말은 누구나 좋아하고
받고 싶어하고 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랑은 많이 결여되고 있고
잘못 남용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서 표현에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그리스어로 네가지 형태로 표현합니다

아가페, 스토르게, 필리아, 에로스

네가지 형태의 사랑의 의미를 조사해 보면
우리들이 나타내는 사랑의 척도와 받고있는
사랑이 어떠한 종류의 사랑인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먼저 아가페 사랑을 살펴보면
아가페 사랑에 대하여“윌리암 버클리 교수는

신약단어집(New Testament Words)에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카페는 정신과 관련이 있으며
단순히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의도적인 생활의 지침이 되는 원칙이다
아가페는 의지와 대단히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아가페 사랑은 원칙의 지배를 받는
즉, 원칙의 인도를 받은 사랑이지만 때로는 강렬한
감정이 수반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원칙에는 좋은것도 있지만, 나쁜 것도 있으므로
성서로 훈련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성서가 세워놓은
원칙에 영향을 받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스토르게 사랑의 표현은 무엇입니까?

화기애애하고 단란한 가족간의 사랑입니다.
가족간의 갖게되는 본연의 애정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합니다

성서 디모데 둘째 3 장 1, 3절에는
마지막날에 이르러 본연의 애정이 없을 것을 예언합니다

가족간에 친밀하게 느껴야 하는 이 본연의 애정이
서글프게도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친형제 지간에
애정이 금이 가고 있으며, 가족보다는 돈과 물질을 택하거나
쾌락과 오락에 빠져들어가 가족을 파탄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봅니다

낙태를 하는 임신부가 늘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연로한 부모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가족이 그토록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돈과 물질로 해결하려는
심리와 태도는 가족간의 본연의 애정이 결여된 표입니다

예레미야 17 장 9절의 교훈은
사람의 마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가족간의 사랑이 스토르게 사랑과 아가페 사랑이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가족간의 본연의 애정이
참으로 아름답게 실천되어 나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과 정(情)을 잘못이해하고 행동하면
정(情)에 끌려서 자식을 징계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방임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나중에는 자식들 한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비극이 닥치게 됩니다

필리아 사랑은 무엇입니까?

친구간의 애정 및 우정에 해당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필리아입니다, 잠언 18 장 24절에는
“형제보다 더 친밀하게 고착하는 친구가도 있다” 고
언급하며 여기에서 언급한 사랑이 필리아입니다

오늘날 진정한 필리아가 많이 퇴색되어 있으며
진정한 친구를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친구를 위하여 우정과 애정을 표현하는 일은
아주 드문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돈문제가 관련되면 친구잃고 돈잃는다는 말대로
오늘날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뉴스보도에 진정한 친구의 모습이
특별하게 보도되기도 하며 그 사람의 행위를
높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필리아를 실천하는 진정한 친구는
친구를 위하여 유익한 습관에 도움이되며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희생할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 중에 속할 것입니다

에로스 사랑은

남녀간의 낭만적인 사랑을 의미하지만
절제되지 않은 그러한 육적인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위하여 서로간의 육체적인 매력에 끌리어
느끼는 사랑, 결혼을 목적으로한 이성간의 끌리는 매력이고
결혼한 부부사이에 갖게되는 성적인 매력과 선물이지만
오늘날 에로스란 이성간의 사랑이
잘못인식되어 남용되고 있습니다

원래 그리스어로 에로스한 사랑은
고대 에로스 여신을 숭배한데서 유래된 표현으로
사랑의 여신을 에로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1세기때 에로스 여신 숭배는
도덕적인 타락을 가져왔고 부도덕한 생활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많은 사람들의 성도덕을 타락시켰습니다

오늘날도 남녀간의 단순한 애정을 에로스로
승화하여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냐를 떠나 유부녀를 사랑하든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든지 나이를 떠나서든지
이성간의 사랑을 논할 때 사랑이라고 사용하며
그리스식 에로스한 사랑이라고 묘사합니다

부도덕과 사랑을 구분짓지 않고 이성간의 사랑을
에로스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성도덕의 타락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고 성과 관련된 사랑을
아름답게 미화하고 포장하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쥬리엣 같은 사랑이 찬양되어
에로스한 사랑앞에서는 죽음도 정당화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당한 에로스한 사랑은 가정파괴와 함께
남녀간의 인생파멸의 열매를 거두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오로지 에로스한 사랑을 위해서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출세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어 사랑의 네가지 표현을
살펴볼 때 우리들의 사랑의 척도는 어느정도 인지
자문하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발전되어 나가야
행복한 삶을 살면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한가지면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네가지의 그리스어 사랑의 표현들을 함께 적용하면서
생활에서 나타낼때 삶은 풍요롭고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종교를 갖는일에도 이러한 사랑이 실천되어야
진정으로 참다운 종교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며

가정네에서 아가페 사랑과 스토르게 사랑 그리고
필리아 사랑인 우정과 애정 그리고 이성간의 진정한
에로스한 사랑이 함께 함으로 가정생활은 더욱 아름답고
윤택헤 나갈것이며 진정한 가족의 행복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이성간의 사랑에도 단순히 육체적으로 끌리는 에로스한
사랑만 가지고는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누릴수 없습니다

그러한 사랑은 순식게 식어버리고 서로간의 불행을 가져옵니다

에로스한 사랑에 필리아 적인 우정과 애정이 이성간의
그리고 부부간에 이루어져야 하며,

스토르게적인 가족간의 본연의 애정이
결핍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이해하고 서로희생하며 참아나가야 참다운 부부생활
가정생활이 행복하게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참다운 종교인의 생활에는 바로 이러한 사랑을
맺기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미 그러한 열매의 일부분이 나타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게될 것이다 라고
마태 7 장 20절 에서 언급하셨습니다

성서가 표현하는 참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사랑의 탁월한 가치를 깨닫고 미래의 대한
확신을 같고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사랑의 탁월한 길에 대하여 배워야 합니다

성서를 통하여 그러한 사랑의 탁월한 길을
배울수 있으며 우리의 삶이 행복하게 변해갈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이 세상에는 사랑의 탁월한 특성들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가득차게 될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 한사람이 되어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행복일 것입니다

방문하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함으로
사랑의 탁월한 길에 대하여 알게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