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포커스> ‘알파걸’이 세상을 바꾼다

[문화일보 2007-01-27 ]  


(::공부·운동·리더십 등 모든 분야서 남성 능가::) 서울 은평구의 S고교는 남녀공학이다. 이 학교는 그동안 남녀학 생을 구별하지 않고 내신등급을 매겼다. 하지만 지난해 신입생부 터는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각기 내신등급 을 산출하고 있다.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성적이 워낙 뛰어나 같이 묶어서 등급을 매기면 남학생들은 좀처럼 1등급을 받기가 힘들었고, 따라서 남학생 학부모들의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
지난해 여자 신입생들은 이 같은 학교의 조치에 당연히 항의했다 . 또다른 ‘남녀차별’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학까지 서슴지 않는 남학생 학부모들의 반발을 우려한 학교측은 요지부 동이었다. 결국 여학생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남녀를 구분해 내신 등급을 받는 ‘역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이 학교 남학생 1등급과 여학생 1등급의 차이가 너무 현저하게 난다는 것. 수학의 경우 여학생이 1등급을 받기 위해선 80점대 이상을 받아야 했지만, 남학생은 60점대 이상이면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과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정 도로 남녀학생의 학력 격차는 크게 벌어져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히 고교 내신성적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 다.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진출은 이미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단 적인 예로, 지난 16일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사법연수생 중 판사 임용이 예정된 여성은 전체(90명)의 64.4%인 58명이었다. 검사 임용이 예정된 연수생 100명 중 여성이 차지한 비율은 44%(44명) 로 나타났다. 판·검사 임용을 앞둔 여성 비율이 전체 190명 중 102명(53.7%)으로 사상 처음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이처럼 급격히 커지고 있는 ‘여성 파워’의 현상을 최근 출간된 책 ‘알파걸’(댄 킨들런 지음, 미래의 창)은 ‘새로운 여자의 탄생’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명한 아동심리학자로 하버드대 교 수인 저자는 1000여명의 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설문조 사를 통해 “미국의 신세대 소녀들이 이전 세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사회계층”이라며 이들을 ‘알파걸’로 선언 했다.

미국 여학생중 약 20%에 해당하는 알파걸은 공부, 운동, 리더십 모든 면에서 남학생들을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들이다. 재능과 욕 심, 자신감이 넘치는 이들은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제약을 느끼 지 않는다. ‘소녀들은 자부심이 별로 없고 외모 때문에 비틀린 심리를 갖고 있다’는 통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자신만만한 이 들은 섹스와 남녀역할, 의존과 독립, 지배와 복종 같은 전통적인 사회구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혀 새로운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 일로 무장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과 동등하다는 것을 당 연한 사실로 여기고 있다”고 이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장래 희 망하는 직업에서도 이들은 전혀 여성으로서의 제약을 염두에 두 지 않는다. ‘장래 일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알파걸들의 응답 을 보면, ▲의학·과학 분야 25.4% ▲수학분야 13.0% ▲공학·기 업분야 12.3% ▲법·정치 분야 9.4% 순이다 알파걸이 탄생한 배경은 간단하다. 그동안 여성들이 힘들게 쟁취 한 남녀평등이라는 토대 위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자와 남자 의 출발선이 똑같은 조건에서 자란 첫 세대라는 것. 이 아이들은 남녀 구분없이 동등하게 부모의 관심을 받고, 동등한 교육을 받 았으며, 동등한 사회진출 기회를 갖게 됐다.

그 결과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수해진,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알파걸 집단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 은 1980년대 말에 태어난 아이들로, 이때가 전환기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80년대 말부터 미국 대학에선 여학생 수가 남학생보 다 많아지기 시작했다. 알파걸들은 급격한 여성 상승세 속에서 성장한 것이다. 지난 2004~2005학년도엔 미국 전체 학위 취득자의 59%가 여자였다.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포함한 비즈니스계 영역에서도 여성의 리더십 역할은 상승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지 ‘포춘’ 선정 5 00대 기업에서 여성 기업간부는 15.7%, 여성 CEO는 1.4%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CEO 비율은 기업세계에서 여성들이 남자와 진정 한 동격을 이루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알파걸들의 급속한 진출은 비즈니스계에서도 남녀의 역전 현상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