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보수교육이 있다는건 다 아시죠?
이번 교육을 못받으면 재위촉이 안된다는군요~
모두들 뵐수 있길 바라며 저는 신청했습니다.

신청하러 진흥원 홈피 갔는데 반가운 얼굴이 있어서 퍼왔습니다.



정겨운 직장생활  


                                박노채│인천 동부경찰서 생활안전과장






신라 성덕왕(聖德王)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길에 바닷가에 잠시 머물러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돌로 된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높이가 천 길이었다. 그 위에는 철쭉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절세미인 수로 부인이 이것을 보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꽃을 꺾어다 바칠 사람이 그 누구인고?”
종자(從者)들이 말하였다.
“사람의 발자취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나서지 않았다. 마침 그때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옹이 수로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오고 또한 노래를 지어서 바쳤다.

짙붉은 바위 가에
손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정겹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평등도 차이도 또한 차별도 없다. 단지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여태까지 양성평등에 대한 법 제도나 남녀간의 인식차이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성희롱 예방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실시한다고 하여,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민법에서 가족법을 전공하기 때문에 업무로 바쁘긴 했지만 양성평등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어내고 싶어 교육을 신청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교육을 이수하였다.
경찰 교육기관에서 행정계장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외래 교수님들이 오시거나 다른 직원들이 우리 사무실에 들릴 때면 행정보조를 하는 의경들이 있었지만 언제나 내가 직접 차를 끓여 대접하며 정담을 나누곤 했다. 어떤 교수님은 대한민국 경찰 간부가 끓여 주는 차를 마셔 보게 되었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외부 손님이나 다른 과 직원들이 곤란해 하며 의경에게 시키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난 내가 끓이는 게 훨씬 정겹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였다.
승진하여 일선 경찰서를 나와 근무할 때는 가는 곳마다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손님들이 올 때면 언제나 차 접대는 여직원이 책임지고 하였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려러니 지나쳤다. 그러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교육을 받고 나서부터는 도저히 그런 사고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양성평등에 위배되는 일이 여러 가지 있지만 하나씩 고치고 남녀의 인식 차이에 대한 오해를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가기로 마음먹고 차 끓이는 것부터 남자와 여자 직원의 인식을 바꾸기로 다짐했다.
어느 날 여성청소년계 사무실에 가서 차 한잔 하자고 이야기했을 때 최고 선배인 남자 직원이 좋다고 이야기하자마자 두 명의 여직원이 동시에 일어서서 차를 가지러 가려했다.
“자! 우리 이러지 말고 말을 꺼낸 과장인 내가 차를 끓이든지 우리 문 경사가 차를 끓이든지 합의합시다. 내 사무실에 여러 분이 오면 과장인 내가 차를 끓여 대접하도록 하고 오늘 이 사무실에서는 문 경사가 차를 끓이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난 차 안 마시고 그냥 나갈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자 문 경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서서 차를 끓인다.
“우리 다음부터 언제나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여직원 두 사람이 멋쩍은 듯이 그냥 자리에 앉는다. 웃으면서 차 한잔씩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여자만 차를 끓여야 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차를 끓이는 일에 남녀의 구분이 없었을 텐데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차는 여자가 끓여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인가. 잘못된 선입관이고 편견이다. 이것도 남녀 권력관계의 산물이라면 하루 속히 제거되어야 할 중요 과제다.
다음날 다시 그 사무실에 갔을 때 문 경사가 음료수를 차려서 내 놓았다. 여직원도 그대로 앉아 있다. 나는 웃으면서 “야, 이 사무실은 여직원이 있어도 남자 직원이 차를 내 오는구나” 이야기했더니 모두 다 따라 웃는다. 작은 일이지만 큰 의식의 변화다. 권력이 차별을 만들 수도 있지만 권력이 차별을 없앨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며칠 후 다시 그 사무실에 가서 여직원에게 차 한잔 하자고 했더니 앞에 앉아 있던 김 순경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물론 남자 직원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던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남성과 여성 자신 스스로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과장인 내가 이렇게 직원 사무실에 가서 한 행동은 다른 사무실에도 알려져서 최소한 우리 생활안전과 내 생활안전계, 생활질서계, 여성청소년계 등 각 계에도 그 분위기가 확산될 것 같아 참으로 흐뭇하였다. 실제로 생활질서계에서 차 한잔 하자고 했더니 남자 직원인 박 경장이 녹차를 끓여 대접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행했지만, 같이 근무하는 남자 직원이나 여자 직원들이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 혼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의 교육은 그런 나를 일깨워, 이 사회에 실재하고 있는 성차별 사안들을 시정해서 진정으로 정겹고 행복한 사회를 가꾸어 나가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서 무척 감사하다.
양성평등 실현에 있어 남자의 의식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자 직원들도 여자 중심으로 변하는 여러 가지 제도들로 인한 이익을 남용하려고 하지 말고, 주어진 권리를 제대로 행사함으로써 그 이익을 자기와 타인을 위해 소중하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남녀 직원이 함께 존중하고 인정받는 평등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하면 정겨운 직장생할이 되고 우리 사회 또한 행복하게 바뀌어 그 누구도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박노채
現 인천동부경찰서 생활안전과 과장

여성부 위촉 성희롱 예방교육 전문 강사
경찰종합학교 교수 역임